우리나라 최초의 피아노는?

조선음악신문 | 2014.07.14 14:51 | 조회 7078

<짐꾼들이 마치 상여를 매고 가는 것처럼 피아노를 운반하는 1900년 초의 모습>

저희 조선음악신문 사이트를 찾아주시어 진심으로 감사드립니다.
오늘은 우리나라 최초의 피아노에 대해 알아보았습니다.^^ 
혹시 , 알고계신 더 깊은 지식이 있으시면 댓글 또는 쪽지 및 메일로 
관리자에게 알려주십시요 감사합니다 ^^


우리나라에 피아노가 언제 들어왔는 지에 대한 
정확한 기록이 없어 설이 분분하다고 합니다. 
최초의 피아니스트인 김영환(1893~1978)은 
'남기고 싶은 이야기:양악백년'에서 
1894년 우리나라 광무국 기사로 초빙된 프랑스인 
마르텔(Emile Martel)이 1905년 초에 결혼을 하면서 
피아니스트인 그의 아내 아말리(Amalie)가 가져온 것으로 보았다네요. 
아말리는 독일인으로 우리나라에서 
최초로 군악대장을 지낸 에케르트(Franz Eckert)의 맏딸입니다.

그러나 최근에 '음악이론가 손태룡'은 
이 보다 5년이나 앞선 미국의 북장로교 해외선교사인 
리차드 사이드보텀(Richard Henry Sidebotham, 한국명 사보담·史保淡)이 
1900년 초에 가져왔다고 주장합니다. 

사보담목사는 결혼직후 아내인 에피(Effie Alden Bryce)와 함께 
1899년 부산에 도착해 대구로 발령을 받아 선교활동을 펼쳤습니다. 
이 보다 3년 앞서 제3대 부산해관장 헌트는 1897년에 부산주재 영국부영사를 
겸임할 때 빅토리아여왕 즉위 60주년 기념행사를 개최하면서 
그의 부인이 초청인사에게 피아노 선율을 선사했다고 합니다. 

그러니까 헌트 해관장은 그해 6월 20일과 21에 양일에 걸쳐서 
성대하게 축하 기념파티를 열었다는 것이겠죠. 

첫날에는 부산항이 한 눈에 바라보이는 
복병산 산자락의 해관장 관사에서 부산주재 외국인 및 지역유지를 초청해 
저녁만찬과 함께 화려한 불꽃놀이를 했다고 합니다. 

이러한 헌트 해관장의 활동상황을 미루어 볼 때 이미 1900년 말에 
부산에는 피아노가 반입돼 있었다는 것을 보여줍니다.
따라서 우리나라에 피아노가 들어온 것은 1900년 전후로 보여집니다. 

17세기 말 이탈리아의 크리스토포리에 의해 피아노가 
탄생한 지 약 200년이 지난 뒤에 국내에 반입된 것이죠. 

서양악기다 보니 이 악기를 다룰 줄 아는 
외국인이 도입해 목회활동 등에 주로 사용됐습니다.

예나 지금이나 피아노는 아무나 쉽게 옮길 수 있는 물건이 아니죠. 

더군다나 구한말 당시 도로사정이나 운반도구가 그다지 발달하지 못했을 당시 
어떻게 이러한 피아노를 무사히 목적지에 운반을 하였는지 궁금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사보담 부부는 미국에서 부산항에 도착한 피아노를 
다시 낙동강 나룻배에 싣고 수로를 따라 
사문진선착장(현 경북 달성군 화원)으로 옮겼습니다.

그리고는 강변선착장에서 16㎞나 떨어져 있는 
대구 시내 집까지 피아노를 옮기기 위해 첫날에는 21명, 
둘째 날은 20명, 셋째 날은 31명의 짐꾼을 고용해 사흘에 걸쳐 작업했다고 합니다. 

그런데 짐꾼들이 피아노 운반에 상여용 막대기를 사용했다. 
상여용 막대기로 운반도구를 만들어 피아노를 올려놓고는 
밧줄로서 단단히 묶은 다음 양편으로 
각각 10여 명씩 마치 나무상여를 메고 가는 것처럼 운반했다고 합니다. 

논과 산길,언덕길,개천 등을 지나면서 가까스로 처소에 도착했는 데 
막상 거실에 넣으려니까 출입구가 좁고 
낮아서 결국 문을 뜯어내고 들여놓았다네요. 

사보담부부가 피아노 곁을 떠나지 않고 
끝까지 짐꾼들과 동행하면서 운반한 피아노였지만 
케이스에 흠집이 나고 건반 2개가 파손되는 등 흐트러져 있었다고 합니다. 
그렇지만 조립완성 후 조율이 잘 되어 연주하는 데는 이상이 없었습니다.

피아노가 한국에 처음 들어올 당시에 , 
피아노를 본 적이 없던 우리 선조들은 피아노 소리를 듣고 
나무통속에 죽은 귀신이 들어안장 있는 줄 알고 화들짝 놀랐다는 일화가 전해지는데요
그래서 피아노는 귀신통이라고 불리기도 했답니다.

사보담 목사님은 피아노가 도착하기 전 
1899년 12월 29일 부부가 생활하는 집과 1900년 3월 26일~28일 3일간 
피아노를 이동하는 과정을 기록, 미국에 있는 부모님에게 편지로 보냈다고 합니다. 

이 편지와 사보담 목사의 유품을 2009년 사라 커티 그린필드를 비롯한 
사보담 목사님의 자손들이 부산 박물관에 
기증함으로써, 한국 최초의 피아노 유입 사실이 밝혀지게 됐습니다.    

영국 태생인 사보담목사님은 1899년부터 미국 북장로교 해외선교부 대구지부서 

1년간 근무하고 부산지부로 옮겨 1907년까지 7년간 활동한 뒤 안식년을 맞아 

미국으로 돌아간 그 이듬해 안타깝게도 12월 3일 가솔린 폭발사고로 

사망하면서 한국으로 돌아오지 못했다고 합니다. 

사보담은 미국으로 돌아갈 당시 이 피아노를 부산까지 옮긴 것으로 알려져 

한국 최초의 피아노는 8년 동안 한국에 머물다가 

미국으로 되돌아갔을 것으로 관측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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