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아노의 역사
피아노는 17세기 말, 이탈리아의 피렌체에서 처음으로 그 모습을 드러냈다.
피아노는 제작자 ‘바르톨로메오 크리스토포리(Bartolomeo Cristofori, 1655-1732)’가
처음 발명한 것으로 추측되며, 당시 크리스토포리는 피렌체를 대표하는 가문
‘메디치’를 위해 건반악기를 제작하고 있었다.
피아노의 전신 하프시코드, 스피넷등을 제작하던 크리스토포리는
1689년경 피아노 제작에 착수했을 것으로 추정되며,
1710년경에는 피아노 3대를 완성했다는 기록이 남아있다.
당시 크기가 큰 하프시코드가 5옥타브가 넘는 소리를 낸 것에 비교하면,
4개의 옥타브로 된 이 피아노는 부드러운 소리를 내는 악기였다.
이후 크리스토포리의 제자 ‘지오반니 페리니(Giovanni Ferrini, 1699?-1758)’가
스승의 뒤를 이어 피렌체에서 피아노를 제작했다.
크리스토포리가 제작한 피아노, 1720년 <출처: Wiki-piano> |
크리스토포리가 만든 피아노의 액션 구조는 피아노의 전신인 하프시코드의 액션 구조와 달랐다.
하프시코드는 현을 뜯어서 소리 내는 구조이지만,
크리스토포리의 액션은 해머(Hammer)로 현을 때리는 구조이기 때문에,
연주자는 음량을 조절할 수 있었고 이전보다 음의 크기도 커졌다.
하지만 이 해머가 연주하지 않은 다른 현을 진동시키는 문제가 발생하므로,
이를 해결하기 위해 댐퍼(Damper)가 고안되었다.
연주되지 않는 현의 울림을 막아주는 댐퍼는 공명에 의한 이상한 음의 발생을 막아주었다.
또한 현을 때리고 난 해머가 반사되어 돌아오도록 하기 위해서
건반과 해머 사이에 잭(Jack)을 넣어 해머가 현과 붙어있지 않도록
고안되었다. 이와 같은 크리스토포리의 해머 액션구조는 오늘날과 같은 피아노의 시초로,
이후 피아노는 지속적인 발전을 거듭하게 된다.
한편 독일에서는 라이프치히 남쪽에서 처음으로 피아노가 만들어졌던 것으로 추측되는데,
건반악기 제작자 고트프리트 질버만(Gottfried Silbermann, 1683-1753)이
1730년대 초에 피아노를 만들기 시작했다는 기록이 남아있으며,
질버만 또한 크리스토포리의 디자인을 따른 것으로 추정된다.
질버만의 피아노는 크리스토포리의 피아노와 비슷하지만,
겉으로 보기에는 당시 독일 하프시코드의 모습과 비슷했으며, 음역 또한 더욱 넓었다.
새로운 피아노에 만족하지 않았던 바흐도 훗날 질버만의 후기 피아노는 인정했던 것으로 전해진다.
그럼에도 독일에서는 1760-70년대까지도
하프시코드와 클라비코드가 건반악기로서 여전히 인기가 있었으며
피아노는 아직 자리를 잡지 못하는 상황이었다.
질버만의 제자인
요하네스 줌페(Johannes Zumpe, 1726-1790)는
1760년경 영국 런던에 자리를 잡고,
크리스토포리의 액션을 이용한
스퀘어 피아노를 개발했다.
직사각형 모양의 스퀘어 피아노는 이미 독일에서
그 모습을 드러냈지만
이 피아노는 영국에서 더욱 큰 인기를 얻게 된다.
당시 하프시코드나 그랜드 피아노보다 비용 면에서 훨씬 저렴하고
건반 터치에 있어서 섬세했던 줌페의 스퀘어 피아노를 위해,
요한 크리스티안 바흐(Johann Christian Bach, 1735-1782)는 소나타를 작곡했다.
1770년경 영국에서는 스퀘어 피아노가 많은 음악애호가에게 사랑 받는 악기가 되었다.
작은 사이즈와 디자인 면에서 뛰어났던 이 악기는 그 후로 100년간 사랑 받았으며,
스퀘어 피아노는 장식 면에서도 전혀 손색 없어 가정용 악기로 자리매김 하게 되었다.
이후로 많은 애호가들이 스퀘어 피아노를 찾으면서, 더욱 다이나믹한 피아노를 원하게 되었고,
이러한 요구에 따라 영국식 그랜드 피아노가 제작된다.
아메리커스 배커스(Americus Backers, ?-1778)와 존 브로드우드(John Broadwood, 1732-1812)가
영국 그랜드 피아노 발전에 큰 역할을 했으며,
브로드우드는 1788년 이후 줌페의 피아노를 모델로 삼아 그랜드 피아노를 생산하였다.
이 시기 피아노의 역사에 있어 중요한 변화가 일어난다.
보다 큰 음량을 원하는 애호가들의 요구에 따라 피아노에는 더 많은 현이 추가될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보다 많은 현이 추가되면서 피아노는 더 높은 장력을 받게 되고,
이를 견디기 위해 피아노의 크기도 커지게 되었다.
그러나 과도한 장력을 견디지 못하는 피아노는 틀어지고 휘어지는 결과를 초래하여,
이러한 구조적 결함을 해결하기 위해 피아노에 철재를 접목시키는 방안이 고안되었다.
현을 묶는 힛치 핀과 음향판 사이에 쇠판을 덧붙여 피아노 외장의 틀어짐을 막으려 한 것이다.
미국의 피아 노 제작자인 알페우스 밥콕 (Alpheus Babcock, 1785-1842)은
1825년 현의 높은 장력을 견딜 수 있는 철골 피아노를 개발하기에 이른다.
한편 독일식 피아노의 전통을 이은 비엔나의 피아노는
1770년대부터 1830년대까지 유럽에서 주류를 이루게 된다.
크리스토포리와 질버만이 기술적으로 뛰어난 피아노를 선보였지만
상업적으로 크게 성공하지 못한 것에 반해,
요한 안드레아스 슈타인 (Johann Andreas Stein, 1728-1792)은
자신의 회사에서 생산한 독일식 액션 피아노로 큰 성공을 거둔다.
비엔나식 액션이라고도 하는 슈타인의 액션은 해머의 바운드로 인한 이중터치를 방지하는 기능을 특징으로
20세기 초까지 지속적으로 발전했다.
비엔나 액션을 사용한 피아노는 같은 시기 영국과 프랑스의 피아노보다
섬세하다는 장점을 지녔으며, 가볍고 부드러운 특징을 지녔다.
이 비엔나 피아노로 음악을 작곡한 수혜자라 할 수 있다.
비엔나의 피아노는 부드럽고 우아한 사운드를 지녔으며, 구조 또한 가벼웠다.
오늘날의 피아노와 다르게 비엔나의 피아노는 검은 건반과 흰 건반이 서로 바뀌어 배치된 점도 눈에 띈다.
하지만 섬세한 음향을 지닌 비엔나 액션은 보다 극적인 표현을 요구하는
낭만주의 작곡가들과 피아니스트에게는 적합하지 않은 것이었다.
보다 큰 음량과 표현력 풍부한 소리를 원했던 음악가들의 요구에 따라, 해머의 무게는 점점 증가했고,
섬세한 음향이 장점 이었던 비엔나 피아노는 점점 음악 청중들에게 외면당하게 된다.
1735년경부터 1850년경까지는
업라이트-그랜드 피아노와
업라이트-스퀘어 피아노가 제작되었다.
현을 수평으로 제작하는 그랜드 피아노와 달리,
현을 수직으로 제작하는 업라이트 피아노의 경우,
공간을 활용할 수 있다는 장점을 지녔다.
이 당 시의 업라이트-그랜드 피아노와
업라이트_스퀘어 피아노는
음향판의 사이즈가 커서 울림이 좋다는 장점도 지녔다.
하지만 일반 가정에서 사용하기에
사이즈가 너무나 크고, 나무 장식이 거추장스러워서 1850년대 이후에는 모습을 감춘다.
이 시기에는 크기가 작고 비용 면에서 좀더 경제적인 피아노를 필요로 함에 따라,
업라이트 피아노가 제작되기 시작한다.
1800년에 처음으로 제작되기 시작한 업라이트 피아노는 이후 계속 발전되는데,
현을 교차시켜 제작시키면서 크기를 더욱 작게 할 수 있었다.
1811년 로버트 워넘 (Robert Wornum, 1780-1852)은 오늘날과 같은 업라이트 피아노를 생산한 제작자로,
1830년경에 이르러 오늘날과 같은 구조의 진보한 피아노를 선보인다.
그 이후로 계속해서 발전을 거듭한 워넘 업라이트 피아노는
1850년에만 약 5만대가 생산될 정도로 전성기를 누렸다.
오늘날 세계 최고의 피아노 제조사로 꼽히는
스타인웨이에서는
1859년 저음부 현과 고음부 현을
교차시키는 교차식 현을 개발했다.
이것은 피아노에 더 많은 현을 장현하려는
애호가들의 요구를 따른 것으로,
피아노 제조사는 현의 수가 증가하는데 따른 장력 증가의 문제를 해결해야 했다.
넓은 옥타브를 위해 더 많은 현을 장현해야 했고, 현의수가 증가하면서 높은 장력을
견딜 수 있는 견고함과, 더 큰 해머, 강한 액션의 설계가 필요했다.
이러한 요구를 모두 만족시켰던 것이 스타인웨이의 교차식 현 설계로,
이로 인해 옥타브를 늘릴 수 있는 기틀이 마련되었다.
<출처: 네이버캐스트 - 정홍래> 의 글을 발췌 수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