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세기 피아노의 역사
19세기 피아노의 역사
피아노 공업은 19세기 초부터 19세기 말까지에는 급속한 변천과 발달을 이룩하였다. 그것은 고전주의 초기 무렵까지의 연주행위가 주로 겨우 수십 명에서 백 명 정도의 귀족 살롱에서 행해졌던 데 반하여, 프랑스 혁명 후 각국 귀족의 몰락에 따라 공중을 대상으로 하여 연주회가 행하여지게 되었으므로 필요 음량이 요구되게 되었기 때문이기도 한 것이다. 그래서 펠트 해머가 고안되고, 굵은 피아노줄(강선)을 세게 켕기기 위하여 쇠뼈대를 짜게 되었으며, 여러 가지 페달이 발명되었고, 다시 음역(音域)을 늘리어 오케스트라하고도 대항할 수 있는 현대 피아노로 변해 온 것이다. 현대의 페달은 두 개로 정해져 있지만 19세기 연간의 제품에는 3개 이상 5~6개가 있어 일정치 않으며, 각기 음색의 변화를 목적으로 하는 것이었다.
피아노의 겉모양도 천차만별이어서, 정통적인 것에는 수평으로 현을 치고 날개를 편 듯한 프뤼겔(그랜드형)을 주류로 하면서도 각기 목적에 따라 수직으로 현을 친 리라 피아노, 기린 피아노 등이 생기어 차츰 업라이트(수형<竪型>)피아노가 되고, 버지널의 연장으로 간주되는 테이블형의 스퀘어 피아노가 되었으며, 손쉽게 운반할 수 있는 갖가지 소형 피아노도 제작되었다. 초기에 우리 나라에 수입된 피아노는 대개 스퀘어 피아노였다.
피아노의 현을 세로로 치는 설계는 이미 쳄발로에서도 엿보였는데, 여기에는 방의 공간을 덜 차지한다는 실용성이 있었다. 처음에는 그랜드형을 그대로 세운듯한 기린 피아노(왼쪽 사진)가 많았으나 차츰 외형을 대칭적으로 정돈하고 다시 장현(張弦)을 교차시키어 오늘날의 업라이트 피아노가 되었다. 키가 크고 리라 모양을 한 리라 피아노는 현재의 업라이트형에의 중간적인 존재로 볼 수 있다.
출처 [네이버 지식백과] 19세기 피아노의 역사 (음악의 역사 (음악사 대도감), 1996.9.10, 한국사전연구사)
피아노 공업은 19세기 초부터 19세기 말까지에는 급속한 변천과 발달을 이룩하였다. 그것은 고전주의 초기 무렵까지의 연주행위가 주로 겨우 수십 명에서 백 명 정도의 귀족 살롱에서 행해졌던 데 반하여, 프랑스 혁명 후 각국 귀족의 몰락에 따라 공중을 대상으로 하여 연주회가 행하여지게 되었으므로 필요 음량이 요구되게 되었기 때문이기도 한 것이다. 그래서 펠트 해머가 고안되고, 굵은 피아노줄(강선)을 세게 켕기기 위하여 쇠뼈대를 짜게 되었으며, 여러 가지 페달이 발명되었고, 다시 음역(音域)을 늘리어 오케스트라하고도 대항할 수 있는 현대 피아노로 변해 온 것이다. 현대의 페달은 두 개로 정해져 있지만 19세기 연간의 제품에는 3개 이상 5~6개가 있어 일정치 않으며, 각기 음색의 변화를 목적으로 하는 것이었다.
피아노의 겉모양도 천차만별이어서, 정통적인 것에는 수평으로 현을 치고 날개를 편 듯한 프뤼겔(그랜드형)을 주류로 하면서도 각기 목적에 따라 수직으로 현을 친 리라 피아노, 기린 피아노 등이 생기어 차츰 업라이트(수형<竪型>)피아노가 되고, 버지널의 연장으로 간주되는 테이블형의 스퀘어 피아노가 되었으며, 손쉽게 운반할 수 있는 갖가지 소형 피아노도 제작되었다. 초기에 우리 나라에 수입된 피아노는 대개 스퀘어 피아노였다.
피아노의 현을 세로로 치는 설계는 이미 쳄발로에서도 엿보였는데, 여기에는 방의 공간을 덜 차지한다는 실용성이 있었다. 처음에는 그랜드형을 그대로 세운듯한 기린 피아노(왼쪽 사진)가 많았으나 차츰 외형을 대칭적으로 정돈하고 다시 장현(張弦)을 교차시키어 오늘날의 업라이트 피아노가 되었다. 키가 크고 리라 모양을 한 리라 피아노는 현재의 업라이트형에의 중간적인 존재로 볼 수 있다.
출처 [네이버 지식백과] 19세기 피아노의 역사 (음악의 역사 (음악사 대도감), 1996.9.10, 한국사전연구사)